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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더 위험해진 대만해협…'의전 논란' 대한민국

송고시간2022-08-0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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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현재 논설위원 =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민주주의의 보루'라며 대만을 추어올리고 떠난 지 하루 만에 대만이 사실상 포위됐다. 2일 밤부터 대만해협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에 착수한 중국은 4일 대만을 여섯 군데로 에워싸고 실사격 훈련을 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가 공개한 대만 봉쇄훈련 지도를 보니 6곳 중 가장 가까운 지점은 대만 남쪽 해안에서 불과 16.6㎞ 떨어져 있었다. 지난 수십 년 내 중국군이 대만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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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구역에서 실시한 사격훈련 첫날 11발의 둥펑 미사일이 발사됐다. 동부전구 대변인은 미사일 발사 목적이 "정밀 타격과 지역 거부 능력 점검"이라고 했다. 지역 거부 능력 점검이란 유사시 미군 항공모함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한 훈련이라는 얘기다. 본토에서 쏜 일부 미사일은 대만 상공을 통과했다고 한다. 북한 원산에서 쏜 미사일이 수도권 상공을 통과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5발의 미사일이 향한 곳은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안쪽이었다. 이번 훈련이 미국과 대만, 일본을 동시에 겨냥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건 그냥 무력 시위 '쇼'가 아니다. 대만 코앞에서 침공을 가상하고 봉쇄와 저지 실전 훈련을 하는 것이다. 대만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필리핀해에는 미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가 떠 있고, 상륙작전함인 트리폴리도 인근에 있다. 미국, 중국, 대만은 직접적 군사 충돌을 피하려 하겠지만 미사일 한 발이라도 오발 사고가 생긴다면 이 지역은 급격히 과열되면서 전면 충돌로 전개될 소지가 크다. 부글부글 끓다가 작은 촉발제로 인해 대형 충돌로 번지는 것이 인류 전쟁사의 교훈이었다.

본토의 군사 위협에 익숙해진 대만 사람들도 펠로시 방문 이후 위협은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고 느낀다고 한다. '3차 대만해협 위기'가 있었던 25년 전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 또 그때의 미국과 지금의 미국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더 큰 위기로 비화할지는 미국의 대응과 중국의 후속 훈련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촉즉발의 긴장 국면에 진입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14억 인구의 본토 중국을 상대로 2천300만 대만인들은 지난 수십 년간 안보 위협과 외교적 수모를 받으면서도 민주주의 지수에서 세계 8위, 경제면에서 세계 20위권의 소강국(小康國)으로 성장했다. 구매력 평가 기준 GDP는 한국이 5만3천 달러로 세계 25위인데 비해 대만은 6만8천 달러로 11위다. 중국과의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대중국 무역 비중은 23%를 차지한다. 외교적 독립 상태는 아니지만, 사실상 독립 상태로서의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대만인들이 80% 가까이로 압도적이다. 양안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은 게 대만인들이다. 펠로시는 대만 방문이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대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토머스 프리드먼 NYT 칼럼니스트는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한다고 해서 대만이 더 안전해지고, 더 번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훨씬 위험한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안보 라인 수장들도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간접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점에서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고, 미중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사전에 펠로시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것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대중 강경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중국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마 펠로시의 대만 방문 강행도 민주당이 고전하고 있는 선거 판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오는 10월 하순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예정돼 있는 중국 역시 미국과의 기 싸움에서 물러설 기색이 없다. 물론,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미중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시 주석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중국의 민족주의적 네티즌들의 성화를 모른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당국이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지켜만 봤다며 "실망했다", "당원증을 반납하고 싶다"고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당국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된 중국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인들에게 대만 문제는 민족주의의 심장과도 같다. 시 주석 역시 대만 통일을 자신의 레거시(유산)로 남기겠다는 욕심이 크다고 한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슈퍼파워를 상대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지,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어떤 전략적 판단을 할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대만해협이 당장 불바다로 변한다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형국인 셈이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왼쪽)과 김진표 국회의장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왼쪽)과 김진표 국회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엄중한 현실 앞에서 우리 정치권은 펠로시 의장 방한 때 의전이 소홀했느니,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를 면담해야 했다느니 하는 문제로 시끄럽다. "사전에 의전 문제를 논의했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펠로시가 서운해했다", "윤 대통령이 냉대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한미 동맹을 최고 가치로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중에 반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과의 대치를 최고조로 높이는 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유리하지는 않다는 판단도 국익을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걸 대통령실이 대놓고 "국익을 고려했다"고 밝힌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에 기대어 콩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충고질이나 비아냥도 국익을 위한 외교 안보 문제 앞에서는 자제돼야 마땅하다. 동북아 긴장의 한복판에 있는 한국 정치권이 미국 하원의장 영접을 놓고 아웅다웅하는 모양새가 다른 나라 사람들 눈에는 코미디로 보일 것이다. 일각의 주장대로 펠로시가 정말 우리 정부나 국회의 의전을 서운하게 생각했는지도 의문이다. 펠로시에게 과연 그럴 여유가 있었을까? 자신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의 무력 시위, 서방 세계의 반응, 바이든 대통령의 대처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을 펠로시가 밤 9시 반에 미군 비행장에 도착한 자신을 제대로 영접하지 않았다고 화를 냈을 것 같지는 않아서 하는 말이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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