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세상] 철공소 옆 맥줏집…을지로보다 '힙'하다는 문래동 가보니
송고시간2020-08-01 07:00
힙지로 넘어 문래동까지 퍼진 '뉴트로' 열풍
(서울=연합뉴스) 정윤경 인턴기자 = "'힙'(hip·유행에 밝음)하잖아요. 이제 스타벅스는 너무 평범하지 않나요."
지난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창작촌에서 커피를 마시던 대학생 김모씨(23)는 힙한 감성을 느끼고 싶어 집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문래창작촌은 문래동에 있던 일부 철강공장이 이전한 자리에 저렴한 작업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며 만들어 졌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용접 불꽃이 튀기는 철공소와 차가운 생맥주 잔이 부딪히는 수제맥주 전문점이 마주보는 특이한 풍경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문래창작촌에서는 김씨처럼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끼러 온 젊은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 "용접불꽃 튀는 철공소 맞은편 맥줏집은 뉴트로 분위기'"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이곳이 '핫스폿'(hot spot)임을 알고 온 사람들도 다수 보였다. 인스타그램에서 문래창작촌을 검색하면 관련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8만3천여개나 나온다.
골목길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벤치에 앉아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카메라로 골목길을 찍던 강은수(22)씨는 "서울 곳곳에 있는 명소를 찍고 있다"며 "지인들이 SNS에 올린 문래동 사진을 보고 왔는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공장과 카페가 한 골목에 공존하는 게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수제맥줏집으로 향했다.
루프톱에 올라가니 서울 시내서 쉽게 볼 수 없는 파란 슬레이트 지붕이 내려다 보였다. 건너편에는 1970년대 들어선 철공소가 보였다.
철공소에서 '지이잉'하는 용접 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맥줏집 손님들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도심에서 소음 취급을 당하는 용접 소리가 이곳에선 오히려 힙한 요소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수제맥줏집 이인기 대표는 "루프톱은 전날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멀리 휴가를 떠날 수 없게 되면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러 온 손님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맥주 전문 월간지 발행인이기도 한 이 대표는 "문래동은 우리나라 최초로 맥주 공장이 생겨났을 정도로 맥주에 대한 역사가 깊은 곳"이라며 최근 창작촌 맷줏집들이 인기를 끄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 "힙한 장소 인증 문화 영향…구도심 활성화 가능"
전문가들은 '힙지로(힙한 을지로)'와 문래동이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해 '뉴트로'(New-tro·복고를 새롭게 재해석해 즐기는 경향을 뜻하는 신조어) 열풍에 SNS 인증 문화가 더해진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디지털 세대는 홍대나 강남 일대처럼 이미 명성을 얻은 곳보다 자신의 개성이 돋보일 수 있는 예술적인 공간을 선호한다"며 "SNS 이용자들끼리 더 힙한 공간을 찾아내 이를 공유하면서 기존 힙스터리즘(hipsterism·유행을 좇는 사람의 생활 양식)을 넘어 문화를 재창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열풍이 구도심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흔히 재개발 등 대규모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서만 도심 슬럼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을지로나 문래동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낙후된 지역의 상권을 살린 사례"라며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도심을 새롭게 명명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발휘된다면 민간 중심 도시 재생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yunkyeong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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