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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되나요] 만삭인데 남편 속옷 챙기라고?…거꾸로 가는 성평등 시계

2021-01-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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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남편과 아이들이 갈아입을 속옷 등을 준비해 서랍에 잘 정리해둡니다."

'입원하기 전 가족을 위한 배려에도 신경 써야 한다'며 집안일에 서툰 남편 등을 위해 생필품을 점검하고 밑반찬도 챙겨두라고 조언합니다.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에 올라온 '임신말기 행동 요령' 중 일부인데요.

결혼 전 입던 옷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집안일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하는 방식으로 체중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지난 2019년 게시된 이 글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회자하며 논란이 됐습니다.

누리꾼들은 "지금이 조선시대냐", "만삭이면 숨쉬기도 어려운데 남편 속옷까지 챙겨 놓으라는 것이냐"며 분노했는데요.

"성차별적 인식을 담은 내용을 정보라고 올려놓은 인식 수준이 놀랍다"는 반응도 쏟아졌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는 문제가 된 내용을 삭제했는데요.

청와대 국민청원에 담당자와 책임자 징계 및 사과를 요구하는 게시물이 올라오는 등 비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시 임신·출산 정보센터'는 서울시가 흩어진 임신·출산 정보를 한눈에 보고 민원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로 개설한 사이트.

시 관계자는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임신육아포털 '아이사랑'에 있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며 "자주 확인하고 내용을 바꿨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 등과 관련한 정부의 무신경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가 정의 내린 '신혼부부 가구' 기준.

'혼인한 지 7년 이하이면서, 여성 배우자 연령이 만 49세 이하인 가구'로 명시해 남성과 달리 여성은 임신 가능성이 있는 경우만 신혼부부로 인정했다는 비난을 받았죠.

결국 국토부는 "주거실태조사 수행기관인 국토연구원이 관례적으로 정한 범위"라며 연령제한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6년 당시 지자체별로 가임기 여성 수를 표시하고 지역별 순위까지 매긴 옛 행정자치부 '대한민국 출산지도'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하루 만에 폐쇄됐죠.

비슷한 시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여성의 고스펙'을 지목, 저출산 문제를 여성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는 지적을 받으며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타 부처 홈페이지 내용을 검증 없이 '복붙'하고, 산하 기관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무엇보다 일련의 사건들은 정부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의구심을 낳고 있는데요.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국가가 여성의 몸을 노동 인구를 재생산하고 노동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여성 개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하기보다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대한다는 점에서 비판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짚었는데요.

현재 일선 공무원을 대상으로 성 인지 감수성 교육 등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성정숙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공공분야는 시민 생활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양성평등 의식을 갖춰야 하고 이에 대한 집중 교육이 필요하지만 대부분 연례적인 교육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각 부처나 기관은 국책 기조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정책 방향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박종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저출산 정책은 어떻게 결혼을 하게 하고, 아이를 낳게 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혼인, 출산 등은 전반적인 삶의 질 개선이 전제돼야 하는 만큼 이 부분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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