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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피처] "치사해서 우리가 다 먹는다" 중국의 때리기에 기발한 복수

2021-03-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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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대만 파인애플은 영양이 뛰어나고 맛있습니다."

"함께 파인애플을 먹고 농부들을 도웁시다!"

지난달 26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페이스북에 파인애플을 손에 든 채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을 올리며 파인애플 소비를 독려했습니다.

이 게시물에는 곧바로 약 12만 개의 '좋아요'가 달리고 대만 파인애플의 품질을 칭찬하거나 파인애플 농부들을 응원하는 댓글이 1만4천여 개 달렸습니다.

대만의 파인애플 케이크인 '펑리수'가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었을 만큼, 대만 파인애플과 관련 제품은 세계 각국에 널리 알려져 있죠.

그런데 차이 총통이 직접 나서서 '파인애플 챌린지'라는 해시태그까지 붙인 SNS 글로 자국 농산물을 적극 홍보하고 나선 이유는 뭘까요.

다소 갑작스럽게 등장한 대만 총통의 파인애플 소비 촉진 운동 배경에는 중국의 무역 제재가 있습니다.

차이 총통이 '파인애플 챌린지'를 시작한 시점은 중국 세관 당국이 대만산 파인애플의 수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한 날입니다.

중국이 밝힌 대만 파인애플 수입 중단 이유는 "지난해부터 대만에서 수입한 파인애플에서 유해 생물이 나왔다"는 것이었죠.

중국 당국은 "유해 생물이 유입되면 중국 본토의 농업생산과 생태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며 수입 중단 조치의 정당성을 강조했는데요.

지난 1일부터 곧바로 시행된 중국의 대만산 파인애플 수입 중단에 대만은 "지난해부터 수출된 파인애플은 더욱 강력한 검역을 거쳤다"며 즉각 반발했죠.

대만 언론과 다수 외신은 중국의 이번 조치가 단순히 검역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성격을 띤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대만의 첫 여성 총통으로 선출된 차이 총통은 대표적인 반중(反中) 정치인으로 유명합니다

대만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은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거해 주장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공공연하게 거부해왔죠.

'일국양제'는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한 국가 안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모두 인정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차이 총통은 중국의 이 같은 '대원칙'을 거부해 왔고, 반중 노선을 유지하며 지난해 대선에서 다시 한번 승리해 정치적 기반인 민주진보당(민진당)과 함께 집권 2기를 열었습니다.

이 같은 대만 정치권과 국민 행보가 중국에 '눈엣가시'가 되면서 중국은 군사·경제 분야 등에서 대만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대만 현지에선 이번 중국의 파인애플 수입 중단도 집권 민진당의 지지 기반 농민들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옵니다.

파인애플 주산지인 대만 남부 가오슝, 핑둥(屛東), 타이난(臺南) 등의 지역이 민진당 지지 성향이 강한 '민진당 벨트' 지역이기 때문이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대만에선 연간 42만 톤의 파인애플이 생산되며 이 중 12%가 수출되는데, 지난해 수출물량의 97%가 중국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이 같은 중국의 '무역보복'으로부터 농민들을 지키자며 차이 총통이 직접 나서자 대만 유력 정치인들도 일제히 파인애플 농장을 찾아가 '인증샷'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일반 시민들도 SNS에 '대만 파인애플'(#taiwanpineapple), '자유의 파인애플'(#freedompineapple) 등 해시태그를 달아 대만산 파인애플 소비를 장려하고 중국의 무역 제재를 비판하고 나섰는데요.

일부 누리꾼들은 지난해 중국이 정치적 의도로 호주 와인에 과도한 관세를 물린 사건을 떠올리며 '대만 파인애플을 먹고 호주 와인을 마시자'는 게시물을 올렸죠.

해외 누리꾼들과 미국·캐나다의 공공기관 등도 파인애플 케이크나 파인애플이 올라간 피자 등을 올리며 대만의 '파인애플 챌린지'를 지지했습니다.

이처럼 각국 누리꾼들이 반중 정서를 공유하면서 난데없이 열린 '온라인 파인애플 파티'는 실제 파인애플 소비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3일 일간 타이완뉴스는 '파인애플 챌린지' 시작 이후 나흘 동안 기업과 일반 소비자들이 4만1천 톤 이상의 파인애플을 선주문했다고 알렸는데요.

나흘간 대만 국내에서 쏟아진 주문량이 지난 한 해 동안 대만에서 중국에 수출한 파인애플 양을 넘을 만큼 많았던 겁니다.

자국의 수출 농산물에 대한 중국의 제재에 대만인들이 '우리가 직접 먹겠다'며 똘똘 뭉치면서 파인애플은 현재 가장 '핫'한 과일이 됐습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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