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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컷] "참여형인 줄 알고…" 작품에 붓자국 더한 커플의 운명은?

2021-04-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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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 5억 원짜리 그림의 정중앙에 녹색 붓 자국을 남기고 사라졌던 건데요.

이 작품은 세계적인 그라피티 예술가로 꼽히는 존원(JonOne·58)이 지난 2016년 내한해 그린 'Untitled'(무제).

약 30분 뒤 이 사실을 발견한 전시장 측은 그림에 페인트칠을 한 뒤 근처에서 쇼핑 중이던 20대 연인을 찾아내 경찰에 신고했는데요.

이들은 "벽에 낙서가 돼 있고 붓과 페인트가 있다 보니 낙서를 해도 되는 줄 알았다"고 해명했고 전시장 측은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 일단 형사책임은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연인은 전시장 바닥의 작품보호선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앞에 있던 붓과 페인트를 보고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착각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전시기획사 측은 미술 도구는 내한 당시 작가가 썼던 것으로 작품의 일부라고 안내문에 명시했고, 전시회 관리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존원이 지난 6일 '훼손된 작품의 복원을 원한다'는 입장을 전해옴에 따라 과연 이 커플이 얼마를 물어내야 할지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전시기획사 관계자는 "보험 처리하면 훼손 당사자가 이를 일부 부담해야 할 수 있어서 최대한 당사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박주희 변호사는 "안내요원이 몇 번 주의를 줬고 주변에 안전바 등도 있는데 작품을 손상시켰다면 그 사람 과실이지만, 이 같은 조치가 미흡했을 때는 전시 주최 측과 관람객 측이 나눠서 책임져야 하고 부담하는 금액도 달라진다"고 짚었습니다.

이번 일을 두고 '참여형으로 오인할만했다'며 연인을 두둔하는 누리꾼도 있는 반면, '주최 측에 확인해야 했다'는 지적도 나왔는데요.

비록 작품을 망가뜨리긴 했지만, 여론이 이들의 잘못만으로 몰아가지 않는 이유는 현대미술에 관객 참여형 콘셉트가 많다 보니 혼동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는 이의 오해나 착각으로 인해 작품이 본래 형태를 잃어버리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데요.

2015년 이탈리아 무세이온 미술관에서 환경미화원이 설치미술품을 내다 버린 것이 대표적입니다.

담배꽁초, 빈 술병 등이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이다 보니 전날 미술관 파티에서 나온 쓰레기로 오인했던 거죠.

비슷한 사례는 국내에서도 있었는데요.

2019년 북서울미술관 전시에서 서현석 작가가 '폐허가 된 미술관'을 구현하기 위해 일부러 쓰러뜨려 놓은 천사상을 관람객들이 직접 세워놓았던 것.

결국 미술관 측이 '눈으로만 보세요'란 안내판을 설치하는 것으로 해프닝은 마무리됐습니다.

때로는 이 같은 행위가 예술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이를 계기로 작품의 주가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죠.

무려 1억 4천만 원에 판매된 이탈리아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은 바나나를 덕트 테이프로 벽에 붙여 화제를 모았는데요.

한 행위예술가가 이 바나나를 떼어 먹어버리는 바람에 더욱 많은 관중이 몰려 흥행에 성공을 거뒀습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미술시장에서 가격은 작가 지명도와 스토리, 화제성, 예술성 등이 고루 반영된 결과이고 구매자의 소유욕에 비례하는 만큼 큰 이슈를 낳은 이번 해프닝으로 존원 작품값은 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작품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경우 자칫 관객이 비용을 배상해야 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요구되는데요.

전문가들은 미술품에 손댈 수 없도록 안전바를 설치하는 등 감상은 방해하지 않되 훼손을 막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미술 애호가들 역시 보다 성숙한 관람 태도에 대해 고민해야 할 텐데요.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는 "폭넓은 해석이 가능한 쪽으로 변화하는 게 현대미술의 트렌드라고 한다면 감상하는 사람도 어떤 관람 수칙이 필요한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어떤 정보를 습득해야 하는지 사전에 숙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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