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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컷] 10년 넘게 교사 안 뽑는데…독어·불어교육과는 없애야 할까?

2021-05-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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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보여주기식 구조조정, 학생들은 무슨 죄냐'

'외국어교육학부 철회하고 5학과 체제 유지 보장하라'

지난달 초 한국외대 사범대생들은 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에 나섰습니다.

대학 법인이 독일어·프랑스어·중국어교육과를 '외국어교육학부'로 통합하기로 했기 때문인데요.

사범대가 교육부 역량진단 C등급을 받아 교원 양성 정원을 30% 줄이는 과정에서 이들 학과의 내년도 신입생 모집인원이 각 14명으로 감소했죠.

대학 측은 단일학과로는 규모가 작은 데다 교원 임용 수요가 적어 탄력적 학사 운영이 필요하단 판단 아래 이같이 결정했는데요.

독일어·프랑스어교육과 재학생은 물론 교수, 동문도 크게 반발했고, 총동문회 측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죠.

교육부는 교원 양성 정원을 감축하라고 했을 뿐 학과와 관련된 권고는 없었고 학내구성원과의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간 독어와 불어 교사를 뽑지 않아 이들 학과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됐는데요.

국공립 임용시험을 통한 독어·불어 정교사 선발은 각각 2008년, 2009년부터 전무하고, 서울대 독어교육과, 불어교육과 역시 지난 10년간 교사를 배출하지 못했죠.

중국어, 일본어가 제2외국어를 꿰찬 데다 설사 자리가 나도 기간제 교사 등을 채용, 임용이 이뤄지지 않았던 겁니다.

상명대는 2015년 불어교육과·국제통상학과를 합쳐 글로벌경영학과를 신설했고, 한국교원대도 같은 해 독어·불어·중국어교육과를 학부로 묶으려다 내부 반발로 철회했죠.

이제 전국에 남은 독어·불어교육과는 6곳, 5곳으로, 이들 역시 구조조정 명단에 오를 수 있다는 게 교육계 시각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통폐합이 해결책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데요.

다른 학과와 합쳐지면 세부 전공으로 독어·불어교육과를 선택하는 학생이 적어 사실상 과가 사라질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해당 언어 교육이 가능한 예비인력이 없어진다면 막상 필요할 때 배울 수 없다는 우려도 있는데요.

현재 서울 공립고교 불어 정교사는 총 6명으로, 이 중 4명은 올해, 2명은 각각 내년과 내후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 언어를 배우려는 고교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요.

전국 400개 고교 2만9천46명을 조사한 결과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독어 175명, 불어는 168명의 교사가 더 필요하다는 통계도 있죠.

독일·프랑스가 여전히 산업 강국이며 독어·불어가 유럽 주요 언어인 만큼 관련 교육이 필수이고, 전공필수과목을 통해 해당국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갖춘 전문인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어문학과로 대체 불가하다는 게 외국어교육과 입장입니다.

신형욱 한국외대 독일어교육과 교수는 "외국어교육 본질이 다문화사회 세계시민 양성으로 옮겨가는 추세인지라 제2외국어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중국어, 일본어만 가르치면 우리 운명을 이 지역에 맡기고 동네에서만 교류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교원 수급 상황을 고려해 신규 채용이 없는 외국어교육과는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당초 교사가 되려고 입학한 학생이 졸업해도 꿈을 이룰 수 없다면 시간 낭비인 만큼 '학과 이기주의'를 탈피해 미래 유망 학과를 밀어줘야 한다는 거죠.

학령인구 감소 흐름 속 대학이 구조조정에 성공해야 살아남다는 위기의식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탭니다.

관련 법에 따라 학생 총원을 확대할 수 없는 수도권 대학은 특정 학과 정원을 늘리려면 타과를 줄여야 하는데요.

인공지능(AI) 등 다루는 컴퓨터공학과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지만 서울대가 지난 15년간 55명으로 입학 정원을 동결했을 만큼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한 게 사실이죠.

전문가들은 눈앞의 현실만 보고 학과를 없애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통폐합 역시 학과 잔존 목적이 아닌 장기적 발전 관점에서 진행돼야 하고, 이해관계자들과 긴밀히 소통해 수용 가능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학생을 줄이면 교수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둘은 나눠서 봐야 한다"며 "특히 교수는 전공 변경이 쉽지 않은 만큼 기본 인원은 유지돼야 교내외 수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학과를 지켜 달라고 외치기 전에 자구 노력도 선행돼야 할 텐데요.

김대유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국내외 민간단체와 양해각서(MOU)를 체결, 받아들일 건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등 졸업생이 다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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