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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컷] 음식물쓰레기 먹고 10년 살다가…멸종위기라 부르기도 민망해

2021-07-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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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지난 6일 경기도 용인시 A 사육농장을 탈출한 반달가슴곰(이하 반달곰) 두 마리.

한 마리는 당일 사살됐지만 다른 한 마리는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합니다.

농장에서 키우던 반달곰이 사라지는 일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어나는데요.

지난 5월 울산 곰 연구농장 우리를 빠져나온 한 마리가 주변 민가를 돌아다니다 포획되기도 했죠.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취약종인 반달곰은 한반도 자생종이 사실상 소멸한지라 같은 혈통인 '우수리 아종'이 지리산에 방사되는 등 복원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종 보호를 위해 특별관리해야 할 반달곰이 사설 농장에 있다는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인데요.

동물원을 포함, 전국에 691마리가 남아있다는 이들은 1980년대 동남아 등지에서 들여온 외래종 후손으로 멸종위기종이지만 천연기념물은 아니기에 개인이 키우는 것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들 시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아 사고가 반복될 위험이 높다는 것인데요.

A 농장에선 2012년에도 곰 2마리가 도망쳤다가 사살됐는데 당시도 '시설 노후화'가 그 원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광수 전국사육곰협의회 사무국장은 "대부분 30년 이상 지나 쇠창살이 다 녹슬었는데 농가들이 새로 만들거나 할 여력은 없다 보니 계속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맹수인 만큼 인명·재산 피해는 물론 생태계 교란 등을 야기할 공산이 큰데요.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사육곰은 사람 근처에 가면 먹을 게 있다는 인식이 있어 먹이가 부족해지면 마을로 내려와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자라는 환경도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2019년 동물자유연대 현장 조사 결과 26개 사육장 중 7곳은 잔반을 먹이고 있었고 '뜬 장'에 사는 A 농장 곰들 역시 음식물쓰레기 섞인 사료가 주식이었죠.

농장주들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습니다.

들어가는 돈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지 않은 데다 요즘 웅담을 찾는 발길이 뜸해졌지만 다른 부산물을 파는 것은 법으로 막혀 있어 사료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김광수 사무국장은 "10년 이상 키운 비용을 생각하면 웅담 하나당 3천만 원 정도 받아야 맞는데 1천만 원 수준에 팔린다"며 "이것도 동남아에 비하면 비싼 편이라 국내에선 안 먹는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때문에 상당수 농장주는 폐업을 원하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데요.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농가 입장에선 이제까지 투자비를 포기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오락가락한 정책이 한몫했습니다.

1981년 농가 소득을 높이자며 반달곰 사육을 권장했던 정부는 비판 여론에 밀려 4년만인 1985년 곰 수입을 전면 금지했는데요.

이후 곰 사육 농민 반발에 웅담을 추출하도록 허가했고 도축 연한도 24년 이상 된 곰에서 10년 이상으로 낮추는 등 주먹구구식 땜질 대응으로 일관했죠.

2014년에는 사육곰 번식을 제한해 농가는 곰을 중성화한 뒤 '웅담채취용'으로 기르거나 전시·관람 용도로 변경해야 했는데요.

일부는 이를 악용, 관람용 곰을 통해 불법 증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박은정 녹색연합 녹색생명팀장은 "웅지(곰기름)로 화장품을 만들거나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는 등 돈벌이 수단으로 쓰려는 것 같다"고 짚었습니다.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수차례 고발돼 벌금을 물었던 A 농장주 김모(73) 씨 역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는데요.

관람용 반달곰을 임의로 짝짓기시키고 다른 곰들 앞에서 도살하는가 하면 웅담 구매객에게 살코기·발바닥 등을 제공해 문제가 됐죠.

위법 행위로 얻는 이득이 처벌보다 큰데다 당국이 사실상 손쓰기 힘들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풀이됩니다.

권유림 변호사는 "'몰수형'이 가장 효과적인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벌금형에 그치는 실정"이라며 "형량을 강화하고 '곰 보호소'(생츄어리·sanctuary)를 지어 몰수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 나서 사육곰 산업을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를 위해 일단 전수 조사를 실시, 실태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일 텐데요.

이항 교수는 "국가 주도로 수입된 만큼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며 정부가 사육곰을 사들여 보호소로 보낼 것을 제안했습니다.

누더기가 된 현행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반달곰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야생생물법은 단서 조항을 통해 환경부 승인을 얻으면 도축 및 웅담 채취가 가능하게 했는데요.

보신용 곰 기르기를 허용한 나라는 중국과 한국밖에 없는 데다 IUCN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지적입니다.

신수경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변호사는 "웅담을 얻으려고 좁은 철창 안에서 10년간 살다가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 자체가 비인도적"이라고 꼬집었는데요.

원재천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는 "국민 정서는 물론 '동물 학대를 막자'는 국제관습법 기본 틀에 어긋나는 만큼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유선봉 광운대 법학과 교수 역시 "IUCN 권고사항이 강제성은 없지만 반달곰을 취약종으로 분류한 의미를 되새겨 그 취지에 맞게 국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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