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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아랍-이스라엘 '으르렁'…남북한은 '화기애애'

송고시간2016-08-14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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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언론, 이념 초월한 남북 선수 우정에 박수갈채

스포츠 통한 '화해와 치유' 전통 계승 기대하기 때문

(리우데자네이루= 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제31회 올림픽이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남한과 북한 선수들이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다.

적대 관계인 남북한 선수들이 친한 선후배나 동료처럼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됐기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남북관계가 최근 극도로 경색된 탓에 양측 선수들이 갈등을 빚거나 싸늘하게 대할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깬 현상이다.

외국 언론과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 등은 이러한 훈훈한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아랍권과 이스라엘 선수단은 셔틀버스 동승을 피하거나 악수 제의를 거절하는 등 수시로 으르렁거려 남북 선수들과 대조를 이뤘다.

▲ 체조 이은주-홍은정 '다정한 셀카'는 "위대한 몸짓"

남북 선수단이 리우 올림픽 현장 곳곳에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에 외국 언론이 큰 관심을 보였다.

여자 기계체조에 출전한 이은주(17·강원체고)와 북한 홍은정(27)이 연습 도중에 '셀카'를 찍은 것이 대표 사례다.

미국 야후스포츠는 지난 8일 "모두를 하나로 연결하고 영감을 주는 올림픽의 힘은 여전하다"며 "경기 외부에서 인상적인 순간이 있는데 이은주와 홍은정이 함께 사진 찍는 장면이 바로 그 순간이다"고 소개했다.

AP통신은 "정치적으로 아무런 교류가 없고, 핵 문제로 서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리우에서만큼은 한국과 북한이 소통하고 있다"고 12일 호평했다.

이은주와 홍은정이 함께 미소를 지으며 셀카를 찍은 것을 두고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위대한 몸짓이다"고 표현하며 극찬했다.

양궁 선수인 장혜진과 북한 강은주는 친자매처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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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리스트인 장혜진은 "은주가 내게 어떻게 화살을 그리 빨리 쏘는지와 장비를 물어봤다"고 전했다.

진종오는 지난 11일 50m 권총 사격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북한 김성국을 새로운 동생으로 삼았다.

이날 금메달을 딴 진종오(37·KT)는 라이벌 관계인 김성국(30)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시상식 때도 나란히 서서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시상식에서 만난 김성국에게는 "너 앞으로 형 보면 친한척해라"고 말했다며 "동생이 하나 생긴 격이다"고 기자회견에서 털어놨다.

또 "사격장에서 만난 북한 김정수(39)가 나보고 '너 왜 10m 권총은 그렇게 못 쐈느냐'라며 핀잔을 줬다"라는 일화도 소개했다.

이에 "형도 못 쐈잖아요"라고 했더니 "나이가 많아서 그런다"라는 답변을 듣고 "형만 나이 먹었나요. 나랑 두 살 밖에 차이 안나요"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인민체육인 칭호까지 받은 김정수는 진종오보다 2살 많은 북한 사격 영웅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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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뿐 아니라 대다수 남북 선수들은 훈련장 등에서 자연스레 만나 스스럼없이 대화한다. 일부는 전화나 편지, 이메일을 주고받기도 한다.

남북 선수단 사령탑에도 온기가 돈다.

강문수(65) 한국 탁구 총감독과 김진명 북한 여자탁구 감독은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훈련장에서 반갑게 만났다.

연습을 먼저 끝낸 북한 김 감독이 훈련장을 떠나다 강 감독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에 강 감독이 악수를 청하자, 김 감독은 약 20년 대선배 격인 강 감독에게 허리를 굽히며 깍듯하게 두 손을 내밀었다.

강 감독이 "열심히 한다. 좋은 결과 있겠다"고 덕담을 건넸고, 김 감독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 이스라엘-아랍권 선수들은 곳곳에서 '갈등'

남북 선수들과 달리 이스라엘과 아랍권 선수들이 만나는 곳에서는 냉기가 감돈다.

셔틀버스나 경기장에서도 서로 외면하거나 갈등을 빚었다.

첫 충돌은 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지난 5일 셔틀버스에서 벌어졌다.

선수촌에서 마라카낭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에 동승하는 문제를 놓고 승강이를 벌였다.

레바논 선수단이 먼저 탄 버스에 이스라엘 선수단이 타려고 하자 레바논 선수단장이 승차를 가로막은 게 발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회 조직위원회 측이 차량을 추가로 마련해 이들을 분산시킨 덕에 사태를 봉합했으나 이스라엘 측은 강하게 항의했다.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집트 유도 선수는 이스라엘 선수와 치른 경기를 마치고 악수를 거부했다가 징계 위기에 몰렸다.

남자 유도 100㎏ 이상급 32강전에 이집트 대표로 출전한 엘 셰하비(34)는 경기 패배 후 이스라엘의 오르 새슨(26)이 청한 악수를 거부한 채 퇴장했다.

관람객은 큰 야유를 보내며 셰하비의 '무례한' 행동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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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는 셰하비의 행동이 올림픽 정신을 위배했다고 보고 징계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은 "올림픽 정신이란 경쟁 상대에게 장막을 치는 게 아니라 상대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데 있다"며 "이번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자 유도선수는 이스라엘 선수와 맞대결을 피하려고 고의로 기권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스라엘 일간 '타임즈오브이스라엘'은 사우디의 주드 파흐미 선수가 지난 7일 열린 여자 유도 52kg급 이하 1차전에 나오지 않아 인도양 섬나라 모리셔스 선수 크리스티안 르장띠에게 몰수패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파흐미가 이 경기에서 이기면 부전승으로 1차전을 통과한 이스라엘의 유도 기대주인 길리 코헨과 맞붙게 돼 있었다.

사우디 올림픽 선수단은 트위터를 통해 "파흐미가 훈련 도중 팔과 다리를 다쳐 출전을 포기했다"며 논란 확산을 차단했다.

아랍권 국가들과 이스라엘 선수들이 스포츠 현장에서도 얼굴을 붉히며 증오감을 드러낸 것은 68년간 지속한 유혈분쟁의 앙금 때문으로 분석된다.

양측 분쟁은 1948년 1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시작됐다. 이후 4차례 전쟁 끝에 종전에 성공했으나 그 이후에도 이슬람권 과격 세력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등으로 유혈사태가 계속됐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서는 올림픽 사상 최악의 테러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숨졌다.

▲ 스포츠 통한 '화해와 치유'…"시드니 남북 공동 입장은 역대 최고 감동"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하거나 라이벌 관계의 선수를 인신공격하는 등 스포츠맨십을 어긴 사례가 리우에서도 잇따랐다.

메달을 따면 명예는 물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욕심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메달 지상주의'가 빚은 부작용이다.

이념과 종교, 인종 차이 등을 이유로 상대를 공격하는 사례도 있어 고대 올림픽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대 그리스 민족 최대 스포츠 축제였던 올림픽은 전쟁 속에서 개화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쪽의 피사의 엘리스의 전쟁을 중단시킬 목적으로 시작됐다.

평화와 화합이 올림픽 정신으로 탄생한 배경이다.

실제로 올림픽 경기가 그리스 전역과 이웃 소아시아, 아프리카로 확대됐고, 대회 기간에는 모든 전쟁이 중단됐다.

스포츠 축제를 계기로 평화를 실천한 사례는 10년 전까지 이어졌다.

1971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미국 선수가 중국 선수한테서 중국 깃발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핑퐁외교'가 생겼고, 급기야 양국은 수교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은 전쟁을 중단시켰다.

당시 코트디부아르 대표인 디디에 드로그바가 자국 내전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호소한 것이 주효했다.

그는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카메라 앞에서 "월드컵 기간만이라도 전쟁을 멈춰 달라"고 호소해 정부군과 반군이 감동하게 했다.

1991년에는 현정화와 북한 리분희가 짝을 이룬 남북한 탁구단일팀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을 꺾고 우승한 남북 단일팀은 한 번으로 그쳤지만, 스포츠가 이념을 뛰어넘어 화해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세계인은 스포츠에서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데 박수를 치지만 국가와 이념을 초월한 평화와 우정에는 더 진한 감동을 한다.

스포츠를 매개로 화해와 치유 전통을 계승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회식 때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한 것을 올림픽 사상 최대 감동 순간으로 미국 언론이 꼽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야후스포츠는 리우 올림픽을 맞아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 20개를 선정해 지난 6일 소개했다.

시드니올림픽은 남한과 북한 선수들이 한 국기 아래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개회식에 들어선 첫 올림픽이다.

남북한 선수단 180명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입장하자 관중 12만여 명이 일어나서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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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선수단은 그 이후에도 국제대회에서 함께 입장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평화행진을 펼쳤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는 남북관계가 악화해 남북 공동 입장은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다만, 리우 올림픽에서 나타난 남북 선수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은 스포츠를 동아줄로 삼아 멀어진 남북관계를 바짝 당기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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