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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없는 '호구조사'에 눈물짓고…여전히 아픈 미혼부모들

송고시간2019-05-09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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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2만2천명·미혼부 8천400명…"나홀로 육아·생계 책임에 막막"

법정기념일 '한부모 가족의 날' 올해 첫 시행…"인식개선 뒷받침돼야"

[제작 조혜인] 일러스트

[제작 조혜인]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저도 아기와 함께 세상을 뜰까,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부탁할까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분유 살 돈, 기저귀 살 돈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다섯 살배기 딸 '사랑이'(가명)를 혼자 키우는 아빠 김지환(42)씨는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때 번듯한 직장인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소위 '인 서울' 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임신한 여자친구가 "도저히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며 아이를 낳고 떠난 뒤 사정이 달라졌다.

젖먹이를 떼놓고 일할 수 없어 김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부모님은 믿었던 아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등을 돌렸다.

아빠 혼자 아이를 키우려고 출생신고를 하려니 정부는 값비싼 유전자 검사를 요구했고, 생모 인적사항과 아이를 떠난 이유 등을 따져 물으며 치밀한 '검증'의 칼날을 들이댔다.

여러 차례 재판도 거쳐야 했다. 사랑이는 재판이 진행된 1년 6개월 동안 출생신고도 못 했다. 보육시설에 맡길 수도 없고 의료보험 혜택도 적용받지 못하며 '난민 아닌 난민'으로 살아야 했다.

홀로 '사랑이' 키우는 김지환 씨
홀로 '사랑이' 키우는 김지환 씨

(서울=연합뉴스) 5살 딸 '사랑이'(가명)를 혼자 키우는 아빠 김지환 씨. 김 씨는 미혼부의 출생신고 절차를 간소화하도록 한 일명 '사랑이법' 개정을 주도한 인물로, 최근에는 미혼부 모임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이하 '아품)을 꾸리고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5.9 [김지환 씨 제공] photo@yna.co.kr

◇ 부모 등에 아이 맡길 형편 못 되는 경우 많아…당장 생계 '캄캄'

김씨는 아이를 데리고 일해도 이해해줄 마음씨 좋은 사장을 만나는 행운이 절실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식당, 마사지숍 등을 전전하며 간신히 생계를 이어갔다. 한때는 신용불량자까지 될 정도로 위태로웠다.

다행히 김씨의 사연이 2013년 언론에 알려지면서 법이 바뀌었다. 2015년 11월부터 미혼부가 가정법원의 간단한 확인절차를 거쳐 자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명 '사랑이법')이 시행됐다.

이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미혼부를 돕고 있다. 김씨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의 모임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이하 '아품')이라는 모임을 꾸리고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미혼부, 미혼모라고 하면 '막 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이 있고, 미혼모보다 미혼부는 더 힘들다"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데 미혼부들이 챙겨 받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를 이끄는 김도경(43) 대표도 중학교 1학년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다. 김 대표 역시 한부모라는 꼬리표를 단 뒤 김씨와 비슷한 삶의 궤적을 밟았다.

김 대표는 "한부모들은 아파도 아프지 말아야 한다"며 "육아도 혼자, 생계도 혼자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도 미혼부 김지환씨처럼 부모에게 아이를 맡길 형편이 되지 못해 아들이 어릴 때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만 골라 했다.

김 대표는 "도움받을 수 있는 상황도, 나를 먹여 살릴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몇 년 동안은 계절이 가는 것도 모르고 일을 했다"고 되돌아봤다.

가장 뼈아플 때는 아이에게 주변 어른들이 눈치 없이 '호구조사'를 할 때다.

김 대표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빠가 죽었다고 얘기했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는 솔직히 아빠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얘기해줬다"며 "아이에게 어른들이 대놓고 가족관계를 물어볼 땐 정말 곤란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 '한부모 가족의 날' 지정됐지만…"인식개선 뒷받침돼야"

아직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부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예전보다 개선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5월 10일을 '한부모 가족의 날'로 정해 올해부터 법정 기념일로 시행한다.

법정 기념일이라고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지만 미혼모 단체는 환영하고 있다.

김도경 대표는 "엄마든 아빠든 아이를 혼자 키우더라도 정부가 한 부모 가족을 완전한 가족으로 인정하고, 혼자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써온 바를 인정해 우리를 격려하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부가 저소득 한부모 가정에 지급하는 아동양육비를 늘리고, 지급 대상도 종전 만 14세 미만 자녀에서 올해부터 만 18세 미만으로 확대한 점도 같은 맥락에서 반길 만한 일이라고 김 대표는 덧붙였다.

그러나 제도 개선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지환씨는 "아직도 출생신고를 하려면 2∼3개월이 걸리는데, 이 기간에 아이가 아프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며 "태어난 아이 위주로 법이 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

[이화의료원 제공]

한부모를 향한 따가운 사회적 시선이 여전한 만큼 의식 개선 작업에도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미혼모는 2만2천명, 미혼부는 그보다 적은 8천400명이다. 하지만 조부모나 기혼 형제 호적으로 자녀를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아 실제 한부모는 통계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가족 중 미혼 부모가 생기면 부모님은 크게 상처를 입고, 아이들은 커서 '왜 내겐 엄마나 아빠가 없느냐'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일회성 교육이 아니라 한부모 가정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필요하면 가족 단위 심리 치료 지원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도 "한부모에 대한 편견이 오래된 만큼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편부·편모라는 용어를 한부모로 바꿔야 한다고 하는데,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고 이름만 바꾸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porqu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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