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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국민 46만명] ①생사 모르는 '거주불명자'…사실상 방치

송고시간2017-02-2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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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이상 1만7천여명 중 74%가 '거주불명'…19세 이하도 1만3천여명

행정당국 "방법이 없다"…고령사회ㆍ수명ㆍ투표율 등 못믿을 기초 통계

<※ 편집자 주 = 사라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빚을 지고 은신하거나 죄를 짓고 숨은 이들, 노숙자나 부랑인, 더러는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그 숫자가 무려 46만2천명에 달합니다. 국민 100명당 거의 1명꼴인데도 정부는 이들을 탁상 위의 통계 숫자로만 다루고 있습니다. 생사조차 모르는 이들의 신성한 한 표가 버려지고, 죽음을 숨기고 복지혜택을 타내거나, 살아있는데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거주불명자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들이 범죄에 연루되거나 가난과 질병에 방치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연합뉴스는 사라진 국민 46만명이 누구인지, 그들은 어디에 있는지 추적해보고, 정확한 인구 통계의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 8건을 네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사라진 국민 46만명] ①생사 모르는 '거주불명자'…사실상 방치 - 1

(수원=연합뉴스) 김광호 기자 = 지난해 말 현재 주민등록상 경기도 내 110세 이상 노인은 791명이다.

그러나 이들 중 실제 거주가 확인된 사람 19명뿐. 나머지는 생존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거주불명자다.

전국 100세 이상 국민은 1만7천701명. 이중 74.1%인 1만3천113명이 생사를 알 수 없는 거주불명자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사망했다면 한국의 평균 수명과 고령사회 지수 등 각종 인구 관련 통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국에 이같은 거주불명자가 46만명2천명에 달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거주불명자들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국민 100명 중 거의 1명에 해당하는 국민이 거주불명자로 등록된 채 국가의 보호와 관리를 받지 못하고 사실상 방치된 것이다.

◇ '투명인간'이 된 국민 46만명…그들은 누구인가

행자부의 인구 통계에 따르면 재외국민을 포함해 지난 1월말 현재 전체 국민은 5천170만4천332명. 이 중 0.9%인 46만1천974명(40만290세대)이 거주불명자다.

2009년 4월 1일 주민등록법이 개정돼 주민등록 무단전출자 말소제도가 폐지되면서 2010년 10월부터 주민등록말소자 모두 거주불명자로 일괄 전환됐다.

이들은 주민등록이 남아 있는 만큼 당연히 인구 통계에 포함된다.

노숙자[연합뉴스 자료사진]
노숙자[연합뉴스 자료사진]

행자부와 각 지자체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거주불명자는 대부분 무단전출자"라고 밝혔다. 채무, 범죄, 가정문제 등 다양한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이사하고도 기간 내 전출입 신고를 하지 않거나 고의로 숨어 사는 국민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2006년 한 연구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주민등록말소자의 80∼90%가 개인 간 채권·채무 등 신용불량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같은 설명이 모든 거주불명자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거주불명자의 연령대를 보면 0∼9세 2천308명을 포함해 미성년자인 19세 이하가 1만3천469명에 이른다. 100세 이상도 1만3천113명이나 포함돼 있다.

이들이 채권·채무 등으로 '무적자' 생활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이들의 안전에 우려가 커지는 이유이다.

100세가 넘은 고령자들의 경우 사망한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고 추정된다.

경기도 한 동사무소 주민등록 담당 공무원은 "100세 이상 거주불명자 중 상당수는 이미 사망하셨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 기관은 거주불명자 중 무허가 요양시설이나 복지ㆍ의료시설 등에서 생활하는 고령자들도 적지 않으리라고 보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 증가[연합뉴스 자료사진]
무연고 사망자 증가[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대로라면 200세 국민도 나온다"…허술한 인구통계

행자부는 현재 거주가 확인된 국민 중 전국 최고령자는 118세라고 밝혔다.

하지만 거주불명자를 포함하면 주민등록이 남아 있는 전국 최고령자 나이는 이보다 훨씬 많아진다. 경기도 성남시에 주소가 있는 한 거주불명자는 1885년생, 올해 132세이다.

행자부는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거주불명자 중 최고령자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없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거주불명자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 또 행정 기관이 이 거주불명 주민의 생사를 파악하지 않는다면 주민등록 시스템에는 200세가 넘는 국민도 나올 수 있다.

고령 인구[연합뉴스 자료사진]
고령 인구[연합뉴스 자료사진]

주민등록 관리 부실의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한동안 수원 등에서 노숙 생활을 한 오모(67.여)씨는 사망자로 처리돼 있다가 최근 주민등록을 부활시켰다. 역시 수원역 근처에서 노숙하던 장애인 서모(49)씨는 아예 호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사례는 전국적으로 적지 않으리라고 추정되지만, 정부는 실태를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정부의 허술한 주민등록 관리는 다양한 문제를 낳는다. 우선 국가 선거업무에 영향을 준다.

경기도 용인에 살던 A씨는 2012년 12월 사망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선거인 명부에 올라 있었다. 행정처리 실수로 사망처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거주불명자로 등록되면 설령 200세가 넘어 사망이 확실시되더라도 투표권이 부여된다. '사망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투표율 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경기도 한 지자체 주민등록 담당자는 "사망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행정착오 등으로 사망자의 주민등록 말소가 이뤄지지 않으면 당연히 선거인 명부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거인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해서 거주불명자들의 선거권이 보장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2014년 10월 진선미(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4년 9월 30일 기준 투표권 있는 19세 이상 거주불명자 46만1천여명이 읍면동 주민센터로 주소가 등록돼 있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실시된 지방선거 당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읍면동 주민센터 거주불명자들에게 보낸 선거공보물은 31만1천여명 뿐이었다.

살아 있을 많은 거주불명자가 선거권을 보장받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투표장 가는 고령 유권자[연합뉴스 자료사진]
투표장 가는 고령 유권자[연합뉴스 자료사진]

기초노령연금 등 각종 복지 정책의 구멍도 우려된다.

2013년 6월 감사원이 발표한 보건복지부 대상 감사 자료를 보면 기초노령연금 지급 대상 거주불명자 32명을 조사한 결과 20명이 노령연금제도의 내용 자체를 모른다고 응답했다.

거주불명자라는 이유로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국민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거꾸로 사망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사례도 매년 나온다. 부실한 통계 때문에 복지재정이 새는 경우다.

거주불명자들이 각종 범죄에 희생됐거나 노출될 위험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역시 크다.

◇ 행정 기관 "방법이 없다"…"원영이 사건 교훈 삼아야!"

정부와 지자체는 분기마다 일제 조사를 해 거주불명자 등을 정리한다.

주민등록 자료를 토대로 이장이나 통반장을 통해 한 주민이 등록된 주소에 실제 거주하는지를 확인한 뒤 살지 않는다고 하면 공무원이 직접 현장 확인에 나선다.

이웃과 가족 관계부의 가족 등을 수소문, 소재 파악을 한 뒤 거주가 불분명할 경우 공고를 하고 일단 기존 거주지를 주소로 해 거주불명자로 등록한다.

1년 후에도 거주가 확인되지 않으면 주소를 읍면동사무소로 옮겨 관리한다.

하지만 이후 거주불명자에 대한 확인 작업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는 "방법이 없다"며 거의 손을 놓고 있다.

한 지자체 주민등록 업무 담당자는 "인력의 한계가 있어 행정 기관 주민등록 담당자들이 거주불명자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라진 국민 46만명] ①생사 모르는 '거주불명자'…사실상 방치 - 6

전문가들은 국가 통계의 정확성 제고, 범죄 피해 예방 등을 위해 거주불명자 등록 제도를 포함한 주민등록 관리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발생한 평택 '원영이 사건'을 계기로 올해부터 미취학 아동에 대해 교육청, 지자체, 경찰이 함께 소재 파악에 나선 것처럼 거주불명자들도 정부 각 기관은 물론 병원, 복지시설, 민간단체 등까지 협력해 이들의 소재를 추적, 확인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고려대 통계학과 박유성 교수는 "신고에 의존하는 주민등록, 이를 토대로 한 인구통계는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인구통계의 정확성을 위해 여러 기관이 정보를 공유하고 주민등록 인구의 신뢰성 검증을 위한 샘플 검사 등을 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현장 조사도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자부 주민과 관계자는 "거주불명자 등록 제도에 대해 여러 문제점이 지적돼 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k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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