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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지진 가상 체험…'우르르 쾅!' 내 생의 골든타임 30분

송고시간2016-09-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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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층에서 1층까지 비상계단으로 대피…"비 오듯 흐르는 땀에 셔츠는 젖은 수건"

(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9월 23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금요일 오후였다.

퇴근하면 아들과 함께 새 자전거를 탈 생각에 보고서를 쓰면서도 마냥 들떠있었다.

"바로 집에 올 수 있지?"라는 아내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은 게 오후 3시 34분.

63층 규모 부산국제금융센터 [연합뉴스 자료 사진]
63층 규모 부산국제금융센터 [연합뉴스 자료 사진]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62층에 자리 잡은 사무실 창밖의 고가도로를 내려다보며 "당연하지"라는 답장을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책상이 '덜덜덜'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요동치더니 모니터와 작은 액자가 갑자기 앞으로 넘어졌다.

칸막이 넘어 탕비실에서는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여직원의 비명이 들렸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아니야, 아니겠지…"

텔레비전 화면에는 '경북 경주에 규모 7.0 강진'이라는 뉴스 속보 자막이 흘렀다.

천장의 조명 불빛이 잠시 깜빡거렸다. 사무실 곳곳에서 재난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는 휴대전화 알림음이 일제히 울렸다.

"긴급재난문자 [국민안전처] 09.23 15:34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11㎞ 지역 규모 7.0 지진 발생/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고 여진 등 안전에 주의 바랍니다."

휴대전화가 먹통이라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것도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곧이어 "지금 규모 7.0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입주사 직원 여러분은 머리를 보호하시고, 계단을 통해 건물 앞 자갈마당으로 대피해주세요"라는 건물 내 안내방송이 나왔다.

사무실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지진이 발생하면 머리를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합니다'라는 뉴스가 떠올랐다.

책상 아래로 들어가 오전에 도착한 택배 포장을 미친 듯이 뜯고 그 안에 든 자전거 헬멧을 꺼내 머리에 썼다. 살고 싶었다.

과장님은 "김대리, 뭐 하고 있어? 어서 계단으로 가야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무실에서 30m 정도 떨어진 비상계단으로 향하다 바라본 창문 너머는 늘 보던 모습과 크게 달랐다.

황령산 자락 황령터널 인근의 주택가에서는 하얀 연기가 치솟았고, 그 사이로는 작은 불길이 희미하게 보였다.

사무실 유리창의 깨진 틈으로 소방차인지 순찰차인지 모를 차량의 사이렌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 더 큰 지진이 올 수도 있다더니, 정말이었어…"

부산국제금융센터 비상계단 [연합뉴스 자료 사진]
부산국제금융센터 비상계단 [연합뉴스 자료 사진]

출입문이 열린 비상계단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다행히 조명은 켜져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이걸 언제 다 걸어서 내려 가느냐"라고 푸념했다. 층마다 쏟아져 나온 직원들로 계단이 가득 차 뛸 수도 없었다.

우리 회사가 입주한 건물은 63층짜리로 지상에서 꼭대기 층까지 높이는 289m다.

초속 70m의 강풍과 규모 7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들었다.

지진동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멈추는 엘리베이터 6대는 이미 정지된 상태였다.

외부 압력이 감지되면 건물 내 도시가스 공급이 자동으로 차단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건물 자체적으로 한 달에 한 번꼴로 지진 등 재난 상황을 가정한 대피 훈련을 했던 터라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실제상황이었다.

"점심엔 뭘 먹을까? 퇴근하면 회사 근처에서 맥주나 한잔 할까?"라는 잡담을 하며 내려가던 그 계단이 오늘따라 너무나도 막막하게 느껴졌다.

정신없이 내려가다 40층에 이르렀을 때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파서 잠시 쉴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계단에만 두고 5분 넘게 걸어 내려오다 보니 계단 어디에 발을 놓아야 할지 모를 정도의 착시현상이 생겼다.

비상계단에는 창문이 없어서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비 오듯 흐르는 땀에 셔츠는 젖은 수건처럼 변했다.

층마다 배치된 유도요원들의 "천천히, 조심하세요. 곧 1층입니다"라는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

여직원들은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아예 맨발로 계단을 내려갔다. 또 한 번의 지진동이 '쿵'하자 계단 전체에 비명이 쏟아졌다.

드디어 10층. 난간을 잡지 않고서는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다. 같은 동작만 몇백 차례, 종아리가 땅기고 무릎이 몹시 아팠다.

오후 4시가 조금 안 돼서야 1층에 이르렀다.

또 한 번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유리창 등 낙하물이 있을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부산국제금융센터 앞 자갈마당 [연합뉴스 자료 사진]
부산국제금융센터 앞 자갈마당 [연합뉴스 자료 사진]

로비를 지나 바라본 건물 앞 자갈마당에는 이미 몇천 명이 모여있었다.

그 주변은 119구급대 차량 몇 대가 에워싸고 있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다 꿈이겠지…"라는 기대를 하기에는 사이렌 소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렸다.

<※ 이 기사는 규모 7.0의 지진 발생을 가정했습니다. 부산의 초고층 건물인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의 대응 매뉴얼과 건물 특성 등을 참고로 입주사 직원의 입장에서 쓴 가상 체험기입니다.>

pitbul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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